'칸' 김동하의 9년

'칸' 김동하의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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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용산에서 꿈을 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프로게이머인 반 친구의 경기를 보기 위해 제주도에서 서울 용산까지 갔다. 진에어 그린윙스에서 '미소'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던 친구였다. 몇 년전 북미로 갔다고 알고 있는데, 자주 연락이 안 되다 보니까 잘 살고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친구 덕에 그날 용산 경기장의 열기를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딱히 게임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즈음인가. 플레티넘5를 찍었다. 그때부터 프로게이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막연하게, 많이 하면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철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프로를 지망하는 친구와 함께 듀오 랭크를 돌리기 시작했고, 3학년 때 다이아몬드1 후반대를 찍어서 아마추어 팀에 지원을 했다. 그 팀이 프라임이었다.

2014년 여름, LCK 본선 진출이 좌절되고 나서 팀원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결정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다 접고 제주도로 돌아가서 공부나 하려고 했다. 그때, 프라임에 같이 있었던 한 친구가 중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본인은 프로게이머를 간절하게 하고 싶은데, 중국에서 탑 선수와 같이 오라고 했다고 하더라. 의지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한다고, 같이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야기도 나누고, 설득도 당했다. 그렇게 2014년 스무 살, 중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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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만만치 않았던 타지 생활

중국 생활을 떠올리면 내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기억은 솔로 랭크를 되게 열심히 했다는 거다. 점수가 항상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대회는 못 뛰어도 월급은 줬으니까, 거기에 만족하며 살았다. 처음 갔을 때 월급이 150만 원 정도였는데, 3년 계약이었다. 맞다. 3년 계약.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였고, 덕분에 계약의 무서움을 제대로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떤 팀과도 다년 계약을 하지 않는다.

중국에서의 첫 1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함께 갔던 친구와 사이가 틀어졌고, 그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나 혼자 중국에 남았다. 숙소에 한국인은 나 뿐이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정말 말을 한 마디도 안 했다. 말하는 법을 까먹었나 싶을 정도였다. 겨우 스물 한 살인가 그랬는데, 버거웠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시기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보다 힘들진 않더라.

어쨌든 2016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을 했는데, 이야기가 잘 됐다. 연봉을 꽤 잘 받았다. 그래서 또 그 연봉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당시 팀 사정이 좀 복잡했다. 일단 팀에 한국인 선수만 4명이었다. 거기다가 중국인 탑 선수는 어느 정도 잘했는데, 미드-정글이 약했다. 그래서 용병 슬롯을 미드-정글 한국인 선수가 채웠다.

16441506304694.jpg▲ 약 3년 반 동안의 중국 생활
당연히 내 자리는 없었다. 출전 기회는 당연히 없었고, 스크림도 못 뛰고 로스터에 등록도 안 되어 있었다. 그래도 좋은 조건으로 계약했기 때문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문제는 휴가 때 터졌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 전화가 왔다. 갑자기 대회도 안 뛰고, 로스터에 등록도 안 되어 있는데 받는 월급이 너무 많은 것 같다더라.

그래서 "내가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다 너희들 편의 봐주고 너희도 내 편의 봐주려고 이렇게 연봉을 책정한 건데, 말을 바꾸려는 거냐.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예를 들어 내 연봉이 2000만 원이라고 치자. 팀에서 200만 원이면 어떻냐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기존 연봉에서 200만 원 삭감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라 200만 원으로, 10분의 1을 줄이겠다는 뜻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무성' 코치, '라스칼', '에이밍'하고 넷이 함께 있었는데 전화를 끊고 너무 분해서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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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LCK로 돌아오다

타의로 백수가 되고 나서 '라스칼'하고 같이 여러 곳에 테스트를 보고, 같이 들어갈 수 있는 팀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포지션이긴 했지만, 성격도 잘 맞고 게임적으로 서로 도움을 많이 주고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전 경쟁에 대한 압박보다 도움이 더 컸다. 내가 건강이 좋았던 것도 아니라 혹시 아프더라도 나보다 더 잘해줄 수 있는 친구라고 믿었다.

건강 문제는 아무래도 스트레스의 영향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큰 병은 아니고, 잔병 치레 같은 거였다. 최근에 MRI 같은 걸 찍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몸에 큰 문제는 없고 적당히 안 좋다고 하시더라. 아무튼 그렇게 2017년 5월, 롱주 게이밍(2018년부터 킹존 드래곤X)에 입단했다.

16441506324884.jpg▲ 킹존 드래곤X '칸'
2016, 17 시즌은 LCK가 국제 무대에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던 시기였다. 세계 최강의 리그 느낌이었다. 반면 나는 LPL에서 뛴 것도 아니고 2부 리그에서 전전하다가 LCK로 오게 된건데, 당연히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팀 봇 듀오가 '프레이'-'고릴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기대 반, 걱정 반.

그때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프릴라' 형들이 진짜 잘 받쳐줬던 것 같다. 나는 정글을 끌어다 쓰는 스타일이었다. 근데, 과거 미화인지 뭔지는 몰라도 봇에서 단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어려움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1년 반 동안 말이다. 그 두 명이 너무 잘해줬기 때문에 나도 더 잘할 수 있었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느낀다.

16441506335053.jpg▲ 2018 스프링 시절 '칸'
2018 LCK 스프링이 나에게는 전성기였다. 그때는 게임이 되게 쉬웠다. 어떻게 해도 그냥 다 내 생각대로 됐던 시절이다. 그 상태가 몇 주 간 지속됐다. 그 동안은 진짜 내가 게임에서 뭐든 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게임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시절이 절대 잊혀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게임이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예를 들어, 상대 챔피언이 갱플랭크면 우리 봇이 세게 나갈 수 있게 내가 궁극기를 빼두면 좋다. 그래서 그 갱플랭크 궁을 빼기 위해서 액션을 취하면, 생각했던 대로 상대가 궁극기를 써줬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게임이 되니 얼마나 재미있었겠나.

16441506346278.jpg▲ SKT T1 '칸'
킹존과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에 맞춰서 SKT T1(현 T1)에서 연락이 왔고, 직접 찾아오셔서 이야기도 나눴다. 나는 계약을 할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사인을 하는 편이다. 계약이 무서운 줄은 알지만, 그래도 시간을 질질 끄는 건 팀한테도 좋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SKT T1과도 만난 당일에 바로 계약을 하게 됐다.

부담이 있는 자리일 수도 있었겠지만, 장점만 생각하고 갔다. 나만 잘하면 문제 없고, 오히려 장점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멤버 자체도 너무 좋았다. '클리드' 김태민과는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고. 또, SKT T1에 있었던 친구들이 김정균 감독님에 대해서 너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직접 겪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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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중국에서의 두 번째 실패, 그리고 담원

이십대 초반에 중국에서 힘든 경험을 한 건 맞지만, 펀플러스 피닉스에서 제안이 왔을 때 거부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월드 챔피언십 디펜딩 챔피언이지 않나. 그리고, 뭔가 금의환향 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쉽지 않았다. 성적은 안 나오는데, 이게 내 문제인지 팀 문제인지 이런 거에 대한 판단조차 잘 안 섰다. 그래서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갔던 것 같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막연하게 게임만 많이 했다.

연습에는 방향성이 되게 중요한데, 당시에는 내 방향성을 몰랐다. 의사소통의 문제도 있었던 것 같다. 중국 생활을 오래 했지만,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기본적인 것만 되는 수준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냥 내가 그 시즌에 되게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모르겠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은퇴였다. 2017년에 LCK로 돌아오고 나서 계속 다짐했던 게 내가 팀에 민폐가 되는 실력이라고 생각했을 때 은퇴를 하겠다는 거였다. 펀플러스 피닉스와 계약이 끝나면 은퇴하고 남은 시간 동안 방송이나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진짜 의아하게도 내가 그렇게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해볼 생각이 있느냐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더라. 내 대답은 언제나 '죄송하다' 였다. 나이도 나이고, 실력도 실력이라 은퇴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LoL도 두 달 정도 안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정균 감독님이 러블콜을 계속 주셔서 결국 담원 기아로 합류하게 된 거다.

16441506367354.jpg▲ '칸'의 마지막 1년을 선물한 김정균 감독
마인드셋은 다른 때와 똑같았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처음 연습 과정에서 내가 엄청 못했다 근데, 옆에 같이 있는 동생들이 진짜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게 큰 도움이 됐다. 일부러 '캐니언' 김건부의 생활 패턴을 똑같이 따라하기도 했다. 쉬러 갈 때 같이 쉬러 가고, 게임 할 때 같이 게임 하고, 옆에서 게임하는 거 구경도 하면서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어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내려갈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폼이 계속 올라가더라.

실제 대회에 들어갔을 때도 플레이가 잘 됐다. 그런 걸 보면서 주변 환경이 나와 잘 맞는 게 굉장히 중요하구나 싶었다. 펀플러스 피닉스의 분위기가 안 좋았던 건 아니고, 나랑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선수가 팀이 잘못 됐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따지면, 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않았나 싶다.

16441506377927.jpg▲ 2021 월드 챔피언십(라이엇 게임즈 제공)
월드 챔피언십 결승에서 패배하고 나서는 당연히 분했다. 아쉽고, 분했다. 하지만, 인터뷰도 해야 하고, 현장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기뻐하고 있을 EDG도 있었다. 또, 귀국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있는데 그 동안을 우울하게 보내는 게 손해 같았다. 그래서 그냥 웃자고, 즐겁게 마무리하자고 팀원들에게 제안을 했던 것 같다. 준우승을 하는 여정에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그렇고, 그전에 열린 MSI에서도 결승전에서 모드 2:3으로 패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승 한 발짝 앞에서 미끄러진 느낌이다. 큰 무대에서는 실력도 엄청 중요하지만, 그날의 컨디션이나 다전제에서 오는 변수도 분명 있다. 어떻게 두 번 다 2:3으로 졌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우승은 역시 하늘에서 점지해 주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 정도면 2등이 아니라 1.5등으로 쳐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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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프로게이머 '칸', 스트리머 '칸'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정말 힘든 순간이 많았다. 2018년도에는 공황까지 생겼다. 퍼즈에 대한 문제였는데, 대회를 하다가 퍼즈가 걸리면 숨이 안 쉬어지고 그랬다. 마지막 해에는 좀 심했던 것 같다. 퍼즈가 나오면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라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지금도 퍼즈에 관련된 키워드를 생각하면 속이 좋지는 않다. 다행히 담원 기아에서 병원을 연결해줘서 꾸준히 다니는 중이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담원 기아에 오기 전에 은퇴할 때가 됐다고 느낀 게 전부다. 포기라는 단어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돈을 잘 버니까. 처음 억대 연봉을 찍었을 때는 지금 생각해도 진짜 행복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쉬운 건 국제 대회 우승컵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세계 최고의 탑, 역대 최고의 탑 이런 게 욕심나는 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지표인 월드 챔피언십 우승 타이틀이 나는 없다.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 다를 수도 있는데, 만약 준우승도 커리어라고 치면 내가 또 준우승은 기가 막히게 많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어쨌든 우승이 없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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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인 방송을 하면서 느끼는 게 방송이 진짜 어려운 것 같다. 게임에 집중하기도 힘든데, 이야기를 하면서 하고 심지어 훈수나 방플도 있다. 그런 게 힘들더라. 그런 환경에서 점수 잘 올리는 사람들 보면 되게 신기했다. 직접 해보니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방송 감을 익히는 거나 다른 사람들과 티키타카 하는 것도 어렵다. 그럼에도 소소하게 재미를 느껴가는 중이다.

제대 후에도 개인 방송을 이어가고 싶다. 이제 와서 공부를 하기에도, 새로운 재능을 찾아 떠나기에도 늦었고, 코치-감독은 천직은 아닌 것 같아 아예 생각이 없다. 나 같은 애를 코칭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내 꿈은 전업 스트리머다. 가끔 '쇼메이커'나 '캐니언' 선수 초대해서 시청자 수도 늘리고.

종종 10년 후의 나를 상상한다. 프로게이머 2년만 더 했으면 건물 하나 세우고 편하게 인생 즐기면서 살텐데, 그게 안 된다. 아무래도 평생 일하면서 살아야 하나 보다. 아마 10년 후 나는 사회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해 폭삭 늙은 채로 애들이랑 아내한테 바가지 긁히는, 배 나온 중년 가장이 되어있을 것 같다. 지금도 이미 배는 나와있어서 나이만 들면 된다. 사고 안 치고, 가늘고 길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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